작년 한 해, 내 저녁 시간은 통째로 야구였다.

조금 과장 같지만 진짜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일단 중계부터 틀었고, 주말이면 직관 갈 궁리를 했다. 1년 전만 해도 나는 야구를 1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룰도 몰랐고, 어느 팀이 잘하는지도 몰랐고, 솔직히 "그걸 왜 돈 주고 보러 가지?" 쪽에 가까웠다.
그런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비슷하게 "야구 별로 관심 없는데…" 하는 분들 보라고 적어둔다.
1시작은 순전히 친구 때문이었다
발단은 단순했다. 친구가 같이 가자고 졸랐다.
솔직히 처음 얘기를 꺼냈을 땐 몇 번을 미뤘다. 룰도 모르는데 세 시간 넘게 뭘 보고 앉아 있나 싶었고, 표값에 교통비에 먹을 것까지 치면 그 돈으로 다른 걸 하는 게 낫지 하는 계산이 먼저 섰다. 그런데 친구가 워낙 끈질겼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가보고 재미없으면 다시는 말 안 꺼낼게." 그 말에 결국 못 이기는 척 마음이 기울었다.
하필 그때가 온 나라가 야구에 미쳐 있던 시기였다. 나중에 알았는데, 2024년 KBO 프로야구는 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관중 1,000만 명을 넘겼다. 정확히는 1,088만 명. 1982년 프로야구가 생긴 이래 42년 만의 첫 천만 관중이었다고 한다. 경기당 평균 1만 5천 명이 들어찼으니, 어딜 가나 야구 얘기가 나오는 게 당연했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그렇게 재밌나?" 하는 마음 반, 친구 성화 반으로 인천 문학구장(SSG 랜더스필드)에 따라나섰다. 큰 기대는 없었다.
2첫 야구 직관에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직접 가보고 나서야 알았다. 야구장은 경기만 보는 곳이 아니었다.
입구를 지나 관중석으로 올라서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조명이 그라운드를 대낮처럼 밝히고 있었고, 수천 명이 한꺼번에 내는 함성이 벽처럼 밀려왔다. 화면으로는 절대 전해지지 않던 크기였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아, 여긴 뭔가 다르구나" 싶었다.
TV로 볼 때랑은 완전히 달랐다. 일단 사람들이 다 같이 응원가를 부르고 율동을 하는데, 그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면 룰을 몰라도 그냥 신이 났다. 안타 하나에 옆자리 모르는 사람이랑 같이 소리 지르고, 우리 팀이 점수 내면 다 같이 일어나고. 경기 내용보다 그 '다 같이 한다'는 느낌이 먼저 좋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 음식. 야구장 음식이 이렇게 맛있을 일인가 싶었다. 문학구장 하면 유명한 게 크림새우인데, 이걸 시켜 놓고 맥주 한 잔 곁들이면서 경기 보는 그 맛. 이게 직관의 절반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게다가 요즘은 커피 같은 건 자리까지 배달이 와서, 앉은 채로 다 해결된다.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경기만 보면 되는 거다.
경기가 어떻게 끝났는지보다, 집에 오는 길에 "다음에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더 기억에 남는다.

3어느새 '직관 동아리'가 생겼다
한 번 맛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 친구들끼리 자연스럽게 직관 동아리 비슷한 게 만들어졌고, 한 달에 한 번씩 날을 잡아 구장에 갔다.
한 달에 한 번이 어느새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됐다. 다음 직관까지 남은 날을 세고, 그날 뭘 먹을지 미리 정하고, 자리를 어디로 잡을지 단톡방에서 티격태격하는 것까지 전부 재미였다. 경기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그 하루를 통째로 즐기러 가는 느낌이었다.
멤버마다 응원하는 팀이 달라서 그게 또 재미였다. 그중엔 SK 시절(지금의 SSG)부터 한 팀을 쭉 응원해 온 친구도 있었는데, 야구 좀 본 사람 특유의 "이 상황에선 이래야 한다"는 훈수가 은근 도움이 됐다. 나처럼 입문한 사람은 옆에 이런 '야구 통역사' 한 명만 있어도 진입장벽이 확 낮아진다. 결국 나도 그 친구 따라 자연스럽게 SSG 팬으로 정착했다.
한번은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적이 있는데(그날 얘기는 따로 풀어야 할 정도라 여기선 줄인다), 비 맞으면서까지 응원하고 있는 나를 보고 "아, 제대로 빠졌구나" 싶었다.
4결국 집까지 야구가 들어왔다
직관만으로는 성에 안 찼다. 경기 있는 날 집에서도 보고 싶어서, 결국 일을 냈다.
집에 이동형 스크린(스탠바이미)을 들이고, 중계 보려고 OTT(티빙)도 구독했다. (※ 가격이나 사양은 살 때 기준이라 지금이랑 다를 수 있으니 참고만.) 누워서도 보고, 설거지하면서도 틀어 놓고, 그렇게 저녁 루틴이 통째로 야구가 됐다.
처음엔 나도 이런 내 모습이 웃겼다. 1년 전이었으면 "야구 중계를 뭘 챙겨 보나" 했을 사람이, 이제는 경기 없는 날이 되레 허전했다. 이기면 이겨서 신나고, 지면 분해서 다음 경기를 기다리고. 하루하루가 경기 일정에 맞춰 돌아갔다.
돌아보면 1년 전엔 상상도 못 한 모습이다. 야구를 몰랐던 게 아니라, 그냥 재미를 알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더라.
5올해도 저녁은 야구에 내줄 생각이다
이번 시즌도 계획이랄 게 딱히 없다. 그냥 작년처럼 저녁을 야구에 내주면 된다. 거창한 결론도 없다. 다만 1년 전의 나처럼 "야구 잘 모르는데 가도 되나"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한마디만 하고 싶다.
- 룰 몰라도 된다. 가면 분위기가 알려준다. 모르면 옆 사람한테 물어보면 다들 신나서 알려준다.
- 혼자 가기 부담되면 아는 사람 끌고 가라. 나도 친구 따라 시작했다. 한 명만 있어도 다르다.
- 음식 기대해도 된다. 경기 안 풀려도 그건 맛있다.
돌이켜보면 야구가 유난히 대단해서 빠진 건 아닌 것 같다. 매일 저녁 챙겨 볼 무언가가 생기고, 같이 열 올리며 떠들 사람들이 생긴 것 — 밋밋하던 평일 저녁에 그런 리듬이 하나 생긴 게 나한테는 컸다. 룰이나 기록은 그다음에 저절로 따라왔다.
작년 그 천만 명 중 한 명이 나였다는 게, 지금은 꽤 즐겁다. 올해도 SSG를 응원하며 또 한 시즌 저녁을 보낼 생각이다.
야구, 생각보다 별거 아니면서 생각보다 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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