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쯤이야, 둘이 사부작 옮기면 되지 싶었다. 신혼이라 짐도 많지 않고, 어차피 새집이니 낡은 건 다 버리고 몸만 들어가면 될 줄 알았다. 큰 가전이며 가구는 어차피 새로 들이는 참이라 "옮길 게 뭐 있겠어" 했다. 그 만만함이 깨지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 나는 그날 우리 싼타페로 새집과 옛집 사이를 스무 번쯤 왕복했다.

"큰 건 다 새로 샀으니 옮길 게 없지"라는 착각
셀프로 하기로 한 건 순전히 계산 때문이었다. 큰 가전·가구는 새집에 새로 들이니까, 실제로 챙겨 갈 짐이라고는 옷가지에 주방 살림, 자잘한 살림살이 정도. 이 정도면 굳이 이삿짐센터를 부를 것도 없이 우리 차로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되겠다 싶었다. 마침 싼타페라 트렁크도 넉넉하니, 두어 번, 많아야 서너 번이면 끝날 줄 알았다.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은 산뜻했다. 트렁크에 착착 싣고, 새집에 내려놓고, 커피 한 잔 하고. 이삿날을 그렇게 여유롭게 상상한 게 문제였다.
장문을 여는 순간, 계산이 무너졌다
착각의 정체는 '장' 안에 있었다. 옷장, 붙박이장, 신발장, 주방 수납장… 문을 하나씩 열 때마다 짐이 끝도 없이 나왔다. 눈에 보이는 가구가 없다고 짐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동안 장 속에, 서랍 안에, 싱크대 밑에 얌전히 숨어 있던 것들이 문을 여는 족족 쏟아져 나왔다.
"이게 다 어디 있었지?" 싶은 물건이 상자를 채우고 또 채웠다. 안 쓰는 그릇, 언젠가 쓸까 싶어 둔 잡동사니, 계절 지난 옷, 이불… 버릴 건 버렸는데도 남는 게 이만큼이었다. 눈에 안 보이던 짐이 진짜 짐이었다. 짐이 없다고 큰소리친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질 무렵, 이미 현관엔 상자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상자를 구하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마트에서 얻어 온 박스는 금세 동나서 부랴부랴 더 구하러 다녔고, 그릇은 신문지로 하나하나 싸고, 옷은 되는대로 봉투에 욱여넣었다. 짐을 '옮기기' 전에 '싸는' 것만으로도 반나절이 훌쩍 갔다. '포장이사를 부르면 이걸 다 알아서 해주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손에 테이프를 칭칭 감고 있는 그제야 뒤늦게 들었다.
싣고, 내리고, 또 싣고 — 스무 번의 무한 루프
문제는 그 짐을 옮길 수단이 우리 차 한 대뿐이라는 거였다. 트렁크와 뒷좌석에 실을 수 있는 만큼만 싣고, 새집으로 가서, 엘리베이터로 올려 내려놓고, 다시 옛집으로 돌아와 또 싣고. 이 왕복이 도무지 끝나지 않았다.
한 번에 많이 실으려고 상자를 꾹꾹 눌러 담아도, 차 한 대가 삼키는 양은 정해져 있었다. 새 아파트라 짐은 또 엘리베이터로 올려서 집 안까지 들여야 했다. 차에서 내려 카트에 옮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현관까지 나르고, 다시 내려와 차를 빼는 것까지가 한 세트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그날 단지에 이사 오는 집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늘 비어 있어서 기다린 적이 거의 없었고, 덕분에 정해진 시간에 쫓기지 않고 하루 종일 제 속도로 오갈 수 있었다. 만약 입주가 몰리는 날이었다면 자차로 스무 번을 나르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싣는 시간, 가는 시간, 올리는 시간, 돌아오는 시간… 한 바퀴가 생각보다 길었다. 두어 번이면 끝날 줄 알았던 게 대여섯 번을 넘기고, 열 번을 넘기고, 나중엔 몇 번째인지 세는 것도 포기했다. 나중에 헤아려 보니 얼추 스무 번은 오간 것 같았다.
결국 몸이 먼저 항복했다
왕복이 지겨운 것보다 힘든 건 몸이었다. 상자를 들었다 놨다, 차에 실었다 뺐다를 하루 종일 반복하니 허리가 제일 먼저 항복했다. 오후가 되자 상자 하나를 드는 데도 "끙" 소리가 절로 났다. 처음 몇 번은 "이 정도쯤이야" 하며 씩씩했는데, 열 번을 넘기고부터는 말수가 줄었다. 둘 다 지쳐서 차 안에서 말없이 다음 집만 바라보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솔직히 중간에 몇 번이고 생각했다. '이럴 거면 그냥 돈 좀 더 쓰고 업체를 부를걸.' 아낀다고 시작한 셀프 이사인데, 아낀 돈이 이 고생과 며칠 앓아누울 몸값을 정말 이기는 건지 왕복하는 내내 저울질이 됐다. 그래도 이미 시작한 거, 돌이킬 수도 없어서 그냥 묵묵히 스무 번째 트렁크를 닫았다.
이삿날 하루로 끝난 것도 아니었다. 그날 밤은 물론이고 며칠 동안 팔다리가 욱신거렸다. 평소 안 쓰던 근육을 하루 종일 썼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새집에서 맞는 첫날 아침, 설렘보다 온몸이 뻐근한 감각이 먼저 찾아왔다. 짐은 옮겼는데 정작 그걸 풀어 정리할 기운은 남아 있지 않아서, 상자에 둘러싸인 채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짐이 적어 보여도, '장 속'까지 세어봐야 한다
다 옮기고 텅 빈 옛집을 돌아보며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이사는 눈에 보이는 가구가 아니라, 눈에 안 보이는 잔짐이 결정한다. 큰 가구를 새로 산다고 짐이 없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옮기기 애매한 잔짐이야말로 사람을 지치게 하는 진짜 물량이었다.
마지막 짐을 싣고 문을 잠그기 전에, 텅 빈 옛집을 한 바퀴 둘러봤다. 가구가 다 빠지고 나니 방이 이렇게 작았나 싶게 낯설었다. 이 좁은 집에서 그 많은 게 대체 어디에 들어가 있었는지, 스무 번을 실어 나르고도 실감이 안 났다. 그날 배운 걸 한 줄로 줄이면 이렇다 — 짐의 양은 집의 크기가 아니라 살아온 시간에 비례한다. 둘이 몇 년 산 집이 그 정도였으니, 짐 없다고 큰소리친 게 애초에 틀린 계산이었다.
- 장·서랍·수납장을 다 열어보고 짐량을 가늠할 것 — '가구 없음 = 짐 없음'이 절대 아니다.
- 자차로 옮길 거면 트렁크 몇 번 분량인지 냉정하게 세어볼 것. 두어 번일 것 같으면 대체로 그 몇 배다.
- 새 아파트면 엘리베이터 사용 시간도 계산에 넣기(입주철엔 대기가 길다).
- 셀프로 아끼는 돈과, 며칠 앓을 몸값을 미리 저울질해 볼 것.
다음에 또 이사할 일이 있다면, 나는 짐을 싸기 전에 장부터 다 열어보고 '이걸 우리 차로 몇 번에 나를 수 있나'부터 냉정하게 셀 것 같다. 짐 없다고 큰소리치기 전에 말이다. 처음이라 몰라서 스무 번을 왕복했지만, 다음 사람은 그 절반이라도 덜 오갔으면 한다. 무엇보다, 몸으로 때우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그날 확실히 배웠다. 아끼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돈을 쓰는 게 사람을 살린다는 걸, 스무 번째 왕복쯤에서야 인정하게 됐다.
※ 이 글은 신혼집으로 처음 이사하며 셀프로 겪은 개인 경험담입니다. 짐량·거리·집 구조에 따라 사정은 다를 수 있습니다.